‘반전反戰을 외치다’
삼일절에 울리는 일본인 밴드 ‘사토유키에와 곱창전골’ 컴백노래
한국: 2013년 3월 1일(금) 오후 7시, 홍대 앞 KT&G 상상마당 Live Hall
일본: 2013년 4월 5일(금) 오후 7시, 동경 시부야 Classics
출연: 사토 유키에와 곱창전골
게스트: 인디언 수니, Redlow
입장료: 30000원(현장구매), 25000원(예매)
예매처: 인터파크, 샐러드
문의: 샐러드(02-2254 0517, www.salad.or.kr)
주최: 샐러드
후원: 언더드라운드아트채널(www.undergroungartchannel.net)
일본의 자민당이 2012년 12월 16일 총선에서 기존 118석에서 무려 176석이 늘어난 294석을 얻는 압승을 거두었다. 3년 3개월간의 민주당 정권 실험이 막을 내리고 전후 일본을 오랜 동안 집권해 왔던 자민당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됐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한국과의 관계가 어두워지지 않을까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2월 25일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다. 대선 투표에서 51.6퍼센트란 높은 득표율과 집권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는 국회를 두고 있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 터전이 됐다. 아베 총리는 2월 22일인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의 날’의 정부행사 승격을 취소하고 독도 영유권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 단독 제소도 연기하겠다고 밝히는 등 한일관계 정상화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한일 인디밴드의 교두보 ‘사토 유키에와 곱창전골’이 삼일절을 기점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3집의 타이틀곡인 ‘그날은 올거야’의 반전노래에 맞춰 두 나라를 오가며 밴드 결성 18년 만에 첫 단독 유료 공연을 갖는다. 독도문제, 식민지배 사죄와 전시 성노예 문제,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문제 등 모든 한일관계의 정치성은 뒤로 하고 오로지 음악으로만 뭉친 '곱창전골’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노래하고 연주하며 즐거워서 좋다. 우리는 좋다.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다.
“곱창전골은 유머와 에너지와 철학이 있어요” -손숙과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에서
곱창전골은 일본 문화 개방 전부터 홍대에서 활동하며 1999년 1집 <안녕하시므니까?>를 국내 도레미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했다. 당시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소개된 곱창전골은 신중현과 엽전들, 산울림을 좋아해 한국에 건너온 사연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과의 문화개방에 제한이 많았던 시기부터 활동했던 ‘사토유키에와 곱창전골’은 이름도 일본인 이름인 사토유키에를 쓸 수 없어 ‘곱창전골’이었다. 이후 리더인 사토 유키에가 2009년에 솔로 1집 <사랑스러운 그대>를 냈다. 사토 유키에가 보컬, 기타를 맡았으며 시바토 코이치로가 베이스, 이토 코키가 드럼을 연주하면서 2011년 2집 <나와 같이 춤추자>를 발표했다.
2013년 3집 <그날은 올거야>를 통해 좀더 사회적 참여가 돋보이지만 곱창전골 만이 가지고 있는 사이키델릭함이 담겼으며 그 외에 이국적인 감성들이 곡마다 춤추고 있다.
투명한 사운드와 파워풀한 노래
발이 뛰고 심장이 뛰고
세계의 평화를 노래한 사이키델릭 록의 파노라마 ‘그날은 올거야’, 포크 기타의 투명한 가락과 느낌을 살려 가슴을 적시는 ‘고향’, 장구와 Agogo bell, Mracas, Bongo, Cuica, Samba whistle 등 여러 나라의 타악기가 어우러진 ‘횃불’, 환경문제를 노래한 ‘Sliver Lake' 등 3집 앨범 전반에 21세기에 부활한 올드 빈티지 사이키델릭 록이 긴 세월 곱창전골이 추구해오던 사운드로 지금 여기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3집 <그날은 올거야>는 시나위의 리더 기타리스트 신대철과 함께 연주했던 사이키델릭 잼(Psychedelic Jam)이 수록되어 있는 CD가 보너스로 들어있다.
‘사토 유키에와 곱창전골’ 스토리
신중현 음악과 사랑에 빠진 일본인 사토 유키에가 1995년 일본에서 만든 한국 록밴드 ‘사토 유키에와 곱창전골’은 결성 당시부터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96년 압구정 한 라이브하우스에서의 한국 첫 공연은 단지 일본사람이라는 이유로 공연 3시간 전에 경찰로부터 공연 금지 통보를 받아야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프닝으로 인해 오히려 사토유키에와 곱창전골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관심을 받았으며 도레미레코드사의 제안으로 1999년 정규음반 1집 ‘안녕하시므니까’를 발표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당시 일본인의 이름을 밴드이름에 넣을 수 없다는 당국의 명령 때문에 밴드 이름이 ‘곱창전골’ 로 바뀌게 된다. 리더 사토 유키에가 음악인생 20년 만에 자신의 모국이 아닌 한국에서 데뷔의 기적에 기뻐하는 시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음반을 배포한지 6개월이 겨우 지났을까? 도레미레코드사가 폐업하게 되고 밴드 멤버들은 살기 위해 뿔뿔이 흩어져 리더 사토 유키에가 세션을 써가며 밴드의 명목을 이어가는 긴 인내의 시간이 다가온다. 한국 음악에 대한 사토 유키에의 짝사랑은 단지 대중음악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홍대앞 클럽에서 ‘불가사리’라는 무대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당시 한국 문화계에 전무했던 실험과 노이즈 음악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소속사 없이 예술인비자도 없이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다가왔다. 불가사리 공연에서 후원금 명목으로 받은 입장료 5000원이 문제가 되어 2005년 강제추방 당하게 된다. 한국인의 배우자 자격으로 1년 후 재입국한 사토 유키에는 2011년 정규앨범 2집 ‘나와 같이 춤추자’ 를 발표하였으나 밴드 멤버들이 공연 비자가 없어 정식 무대에는 설 수 없었다. 2012년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다문화 예술단체 ‘샐러드’와 전속계약을 맺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고용추천을 받아 아티스트 비자를 취득한 것이다. 음악인생에서 확실히 대기만성 스타일이었던 사토 유키에와 곱창전골. 한국 록음악을 하는 국내 유일의 일본인 밴드로서, 이들이 데뷔 18년 만인 2013년 삼일절에 올리는 첫 유료 단독 공연에 거는 기대와 감동은 그래서 더욱 크고 진하다.
사토유키에와 곱창전골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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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유키에 Sato Yukie (vo,g) |
이토 코키 Ito Koki (ds,cho) |
아카이 코지로 Akai Kojiro (b,cho) |
1995년 일본인만으로 구성된 한국 록 밴드 "사토 유키에와 곱창전골"을 결성.
한국 록 밴드 "시나위", “윤도현 밴드”, "황신혜 밴드" 등을 일본에 초대하고 공동 콘서트를 주최.
1999년 한국 최초 일본인 록 그룹으로 데뷔. 밴드명 '곱창전골'
정규앨범 1집《안녕하시므니까?》(Doremi Records) 발표했으나 이후 도레미 레코드사가 폐업하게 되어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짐.
2003년 드러머 이토 코키 합류.
2005년 사토 유키에 예술인비자 없이 입장료 받는 공연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추방.
2009년 사토 유키에 첫 솔로 앨범《사랑스러운 그대》(Synnara Records) 발표. 일본인 가수가 전부 한국어로
작사 작곡한 한국 대중 음악계 첫 음반.
2010년 베이스트 아카이 코지로 합류.
사토 유키에 홍대앞 문화예술공로상 수상.
2011년 정규앨범 2집《나와 같이 춤추자》(Beatball Records) 발표.
2012년 샐러드와 전속 계약을 맺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고용 추천을 받아 멤버 이토 코키와 아카이 코지로가
11월 E-6 비자취득
2013년 곱창전골 입국 기자회견 및 첫 번째 쇼케이스
정규앨범 3집《그날은 올거야》(Beatball Records) 발표
'사토 유키에와 곱창전골' 첫 단독 유료 콘서드 '반전을 외치다'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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