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양성 실현을 위한 진정한 행보
인터뷰 및 구술 정리 곽세원 기자
골목과 건물마다 각종 원자재가 가득 쌓여있는 서울 문래동에 어울리지 않는 공연 사무실이 있다. 바로 다국적 이주민으로 구성된 국내 첫 다문화 극단 ‘샐러드’이다. ‘다양한 문화가 함께 잘 어우러진다’는 뜻의 샐러드볼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이 극단은 어느덧 올해로 설립 11년을 맞았으며 2014년 고용노동부 인증을 받은 사회적 기업이다. 이주민 인권 문제와 그들이 겪는 고통을 문화예술로써 전하는 박경주 대표와 이제는 가족이나 다름없다는 단원들을 만나 대한민국의 다문화 이모저모를 들어보았다.
지금의 샐러드가 있기까지의 이야기부터 풀어보자.
홍익대 미대 판화과를 졸업하고 1993년 영화 공부를 위해 독일로 갔다. 그 당시 독일은 네오나치 무리가 기세등등했다.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생전 처음 나간 외국에서 난 ‘황인종’에 지나지 않았다.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았고 그것이 샐러드 탄생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 시작은 2005년 인터넷 다국어 대안언론 ‘샐러드TV’다. 떨어진 가족과의 상봉만을 그리는 TV 프로그램에서 다루지 않는 이주민들의 실질적인 문제들을 밀착 취재하여 실시간 영상을 올렸다. 처음엔 1~2년만 하고 그만두려 했다. 그런데 오픈한 지 한두 달 만에 엄청난 수의 페이지뷰를 기록했다. 예상치 못한 외부반응을 보고 꼭 해야만 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방송은 수입원이 될 수 없다. 광고수익으로만 불어나는 운영비가 어려워 2009년 극단을 세웠다. 이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문화예술 활동이 별로 없던 시기라 그들이 직접 이주민 문제를 알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후 사회적 기업이 되어 지속성 있는 단체로 정착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극단 운영자로서 힘든 점과 좋은 점을 꼽는다면.
무엇보다 가장 힘든 점은 매년 해결해야 하는 단원들의 비자 문제이다. 체류 기간이 3개월을 넘기면 굉장히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근로계약서, 소득증명서 등. 예술가가 본인의 수입을 서류로 증명하기가 어디 쉬운가. 하물며 이주민은 어떻겠는가. 한국은 ‘예술인 비자’가 엔터테인먼트에 치중돼 있는 편이다. 그리고 운영비는 늘 안고 가는 고민거리다. 샐러드는 크게 기금사업, 신한은행 지원. 외부 초청공연 수입으로 운영되는데, 개인적으로 공연을 통한 수입이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여러 사업이 없어졌다. 내년엔 다문화 관련 지원 사업이 다시 생겼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기금 신청 대상 조건을 ‘대한민국 국적 소유자’로 한정 짓지 말고 영주권이 있거나 몇 년 이상의 비자를 가진 이주민에게도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민간 차원에서 자체적인 교류가 이뤄지려면 지원폭도 함께 넓어져야 한다.
좋은 점은 우리 공연을 보러 와주는 관객들의 존재다. 특히 우리의 가장 큰 팬은 아이들이다. 정말 엄청난 호응을 보내준다. 새벽부터 공연 준비에 피로가 쌓여 있다가도 관객들이 좋아해주는 모습을 보면 눈 녹듯 사라진다. 이 일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다문화’에 대한 한국 사회 내 인식 수준은 어떠한가. 여전히 개선되고 있지 않은 고질적인 문제점이 있다면.
2000년대 초반 과거와 비교하면 정말 많이 좋아졌다. 다만 다문화 이슈가 결혼이주와 성(性)의 측면으로만 조명되는 게 안타깝다. 이주노동자는 물론 예술가는 더욱더 소외돼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이주민을 ‘갈 사람’이란 시각으로 바라본다. 사실 그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도 ‘돌아가서도 이어지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국적을 한국으로 바꾸지 않을 거면 자국으로 돌아가라는 인식은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기업의 메세나 활동은 어떤 수준인가.
메세나 협회가 추진하는 사업 중에 기업과 예술단체를 매칭하는 사업이 있는데, 문제는 예술단체가 기업 매칭을 성사시켜야 한다는데 있다. 민간단체가 기업 파트너를 구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또한 정권에 따라 바뀌는 기업의 취향도 문제다. 그래서 기업에서 진행하는 사회공헌사업은 3년 이상 지속되지 않는 편이다. 그에 비하면 샐러드는 운이 좋은 것이다. 신한은행이 아시아 리딩 뱅크가 목표인 기업이기 때문에 샐러드의 정체성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현 정권이 천명한 신남방정책이 다문화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 예상하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러나 이 사업을 이끌어오면서 깨달은 건, “요행을 바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억지로 무엇을 만들려고 하면 꼭 무리가 오더라.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꾸준히 한다면 언제든 기회는 온다. 그리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유지되는 동력이 자연스레 생긴다. 그리고 그 단계에 이르면 좋고 나쁨의 개념이 사라진다. 내가 하는 일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이란 걸 깨달으면 더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이는 작가로 유명해지는 일보다 더 의미 있지 않겠는가.
이주민과 정주민의 문화적 경계를 뛰어넘는, 문화교류와 문화다양성에 대한 생각은.
문화는 그냥 우리의 삶이다. 그 삶 안에 정말 많은 카테고리의 문화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다 ‘평등’해야 한다. 사람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문화의 ‘틈’, 비록 그 틈이 작을지라도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부분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공공시장에서 문화예술적인 지원과 의식 변화를 통해 그와 관련된 사회적 기업의 상황이 좀 더 나아졌으면 한다. 그러려면 문화 향유와 관련된 예산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에게 사회적 기업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비주류이면서도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샐러드 같은 문화예술 단체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수익 창출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문화 소비자의 인식 변화도 동반돼야 한다.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규모의 문화예술만 좇는 경향을 지양하고 다양한 문화예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한국은 좋은 나라다. 한국의 새 정부가 아세안과 관계 형성을 좋게 이어가길 바란다. 나를 비롯해 이주자들은 언제나 한국 사회와 사람들과 함께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Gil S. Hizon, 필리핀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부드러워졌음을 실감한다. 앞으로 더욱 좋아질 거라 생각한다.”- Anima Singh, 네팔
※ 이 글은 월간미술 2018년 6월호(401호)에 수록되었으며,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월간미술과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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