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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4 19:48

다문화 극장 샐러드붐 회보 연재(1)

<배우 없는 연극> 공연을 마치고

 

김계화 (샐러드 아티스트)

   지난 4년간 샐러드 무대에 올랐던 <존경 받지 못한 죽음시리즈>총 4편을 <배우 없는 연극>을 통해 9월 6일부터 8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한 뒤 보이지 않고 죽어가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주민의 삶을 표현하는 공연이어서 내 가슴 깊은 곳을 파헤치고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시간을 거슬려서 2009년 8월 샐러드 극단에 제1기로 입단해서 지금까지 5년째 됐다. 그 동안 참 많은 이주여성들과 말 그대로 한국사회의 다문화를 여러 장르의 연극을 통해 공연하여왔다. 처음에는 샐러드 이주여성 극단이라고 하여 나와 같은 이주여성들과 같이 한국말도 배우고 소통도 하고 사회생활의 첫걸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나 2009년 11월 파독광부의 이야기를 다룬 <당신은 나를 기억하는가 > 퍼포먼스 공연을 한 뒤 난 연극의의미를 조금씩 알아가고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비록 나는 한국 사람은 아니었지만, 한국노동자가 파독광부로 파견되어 언어도 모르고 문화도 모르는 낯선 이국 땅 지하 천 수 십 미터 지하에서 숨진 한 광부의 역을 맡으면서 그 느낌과 그 두려움이 내 몸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뜨거운 피로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그날 공연은 나에게 있어서 처음으로 촉 같은 느낌을 세운 공연이었다.

<배우 없는 연극> 공연 중 <당신은 나를 기억하는가>에서 파독한국인근로자 역을 맡은 김계화씨

   2010년 5월 박경주 대표님이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사건을 다루는 공연을 할 것’이라면서 그동안 연출자를 외부에서 초빙해서 공연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사건의 진정성을 위해 당사자들도 부르고 우리 단원들이 자체적으로 공연의 장면을 구상하고 느낌을 찾아가는 창작공연을 해보자고 했다. 외국인들이 보호소에 갇혀서 “불이 났어요!” 자국말로 소리치며 철창을 열어달라고 하는 장면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장면을 통해 참사의 진실이 무엇이지를 엮어가는 장면과 죽은 피해자 외국인과 그 유족과 부상자들의 이 사건에 대한 느낌을 알아가고 표현하는 것까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느낌을 알지를 못해 대표님은 직접 우리 단원들을 데리고 사건의 당사자들을 찾아 갔었는데, 중국말로 통역하는 사이 말을 잇지 못하고 내가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참으로 억울하고 내가 사는 이 사회가 이렇게 비참하고 인간의 대접을 받지를 못하는 것이 비통스러웠다. 공연 전날 너무 긴장한 탓에 꿈을 꿨었는데 아마도 죽은 사람이었던 것 같았다. 이 사람이 꿈속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는 “지하방에서 10년 살았네” 였다. 아마도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위해 이 머나먼 땅에 건너와 지하방에서 산 것도 억울한데 죽기까지 했다는 뜻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정말 섬뜩하고 무서웠다. 첫 공연을 한 날, 유족들의 노래방 장면이 있었는데 많은 관객들이 나와 소통이 되었었던지 공연장 분위기가 많이 흐느끼고 울었었던 것 같았다. 이날 공연 후 나는 처음으로 ‘배우’라는 느낌이 들었고 내가 연극을 통해 표현해야하는 것은 우리 이주민의 이런 불편한 진실이라는 것을 더 절실히 느꼈다.

<배우 없는 연극> 공연에서 국제결혼브로커역을 맡은 김계화씨

   2011년 3월 세 번째 죽음시리즈는 국제결혼을 통해 입국했다가 사망한 베트남 이주여성의 일기를 다룬 연극이었다. 대본을 받아 보는 순간부터 인신매매성 국제결혼에 대해 화가 났었고 우리 단원들이 함께 국제결혼에 대해 열렬한 토론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셋째를 임신하여 공연연습에 참여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었다. 간단한 국제결혼 브로커 역을 맡았는데 대사가 많을 뿐 만 아니라 야한 퍼포먼스를 해야 한다니 마음의 부담이 컸었던 기억이 난다. 초연 이후 임신 6개월이 되었을 때 대구대학교 초청공연이 있었다. 아들을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데리고 가다가 기차 안에서 사고로 뒷머리가 찢어져서 피가 줄줄 나는 상황이 벌어졌다. 공연을 해야 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아가는 마취하고 찢어진 부위를 병원에서 당장 꿰메야 하는 상황이어서 함께 온 편집장한테 아이를 맡기고 나는 바로 대구대학교공연장으로 갔다.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마취가 덜 깬 아들을 보니 눈물이 났었다. 샐러드무대는 정말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움직이게 한다고 생각한다.

   2013년 <배우 없는 연극>은 극본이 있어 연출이 있고 배우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과 우리 이주민이 즉 우리 인간이 만든 작품이고 연출이고 배우라고 생각하며 샐러드는 진정한 다문화 무대라고 생각한다. 아픈 역사를 딛고 더 좋은 다문화를 동화하면서 이번 <배우 없는 연극 >을 통해 참여한 단원의 일원으로서 샐러드 극단이 단체가 있음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샐러드 식구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감사합니다.

2013년 월간 <샐러드붐>1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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